냉혹한 승부사에 투수 혹사로 악명 높은 김성근 감독이지만 사실 이면에는 의외로 따뜻한 감정 가진 사람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업은행 코치 시절에 동대문상고 투수 윤동균을 테스트해 보라는 감독 지시 받고 테스트해 본 결과 도저히 투수 가망없는 윤동균을 가라고 하기 모해서 자기집에 데리고 와서 키운 사실 등에서 냉혹한 승부사의 이면을 볼 수 있다.
1976년 한일고교야구 사례를 소개한다.
당시 한국은 최동원의 원맨쇼로 1, 2차전 연승한 상황
최동원은 1차전 1실점 완투 이어 2차전 3회부터 나와 1실점 호투로 2연속 승리를 거둔다.
문제는 3차전, 최동원 빠진 한국은 16안타를 두둘겨 맞으며 일본에 완패당한다.
그런 상황에서 최동원 올리라는 관중들 함성 무시하고 김성근 감독은 최동원을 등판시키지 않는다.
다음은 동아일보 1976년 9월 6일 기사이다.
중략) 꼭 이기려면 최동원을 내세웠을거다. 그러나 어차피 져도 이기는 판국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한국 코칭스탭이었다. 이는 3연승을 기대하면서 최동원을 내세우라는 1만 5천여 관중의 성화에도 불구한 한국팀 감독 김성근씨의 고집이었는지도 모른다. (중략)
여기서 주목할 것은 관중들 반응이다. 한국 야구를 짊어질 초대형 투수의 어깨는 생각도 안 하고 일본에게 한 경기 더 이기기 위해 최동원을 내 보내라고 하는 저 관중들 함성은 뭔가?
저게 당시 한국야구 풍토!
어리석은 선빠들은 관리 잘하는 것도 능력이라지만 프로출범 이전의 한국야구는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라면 어린 투수 어깨 생각 안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만일 당시 최동원이 3차전 등판했다면?
고교시절부터 연투 밥 먹듯이 한 최동원이지만 한일전 가지는 비중 감안할 때 아직 어린 그의 어깨 어찌 되었을지 아무도 모른다.
실례로 내구력 관한한 역대 손꼽는 조계현도 82년 한/일 고교야구 3경기 연투 후 고교 졸업때까지 제대로 던지지 못하는 시련을 겪는다.
<참고> 조계현은 고교시절부터 급이 다른 투수였다.




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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